블로그에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시험이 끝났습니다. 아직 써야할 보고서가 하나 남았지만, 이래저래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홀가분하다 못해 조금은 어색해요. 그만큼 이번 학기가 무거웠다는 얘기겠죠?
어제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시험이 끝났으니 안 마실 수가 없더군요. 모듬해물을 앞에 놓고, 한라산을 연거푸 마셨습니다. 그러다 술집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스님이 보입니다. 동네 술집에 자주 오시는 염주파는 스님이죠. 가게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단 한 명, 제 친구를 제외하구요.
"계좌 이체도 되나요?"
현금이 없던 친구는 계좌까지 물어보는 성의를 보이며 삼만원을 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플라스틱 염주 세 개와, 두 손 모은 기도를 받았습니다. 이상했죠. 술을 마신 약 5년의 시간동안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한두푼도 아니고, 3만원을 술집 행상인에게 쓰다니요. 그래서 처음엔 친구를 말렸어요. 취기에 그러나보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친구가 너무 굳건하자, 저는 포기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합니다. 식탁 맞은 편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제 뒤통수를 '탁!'하고.
중학교 1학년 때, 대구역에 혼자 간 적이 있어요. 버스를 타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바구니를 놓고 엎드려 있었죠. 저는 버스비를 제외한 전재산 만원을 바구니에 넣었어요.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요. 그리고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잘못 올라왔더군요. 저는 계단을 다시 내려갔습니다.
'분명 방금 드렸는데...'
아저씨의 바구니에 제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상하다며 보고 있으니, 다른 분이 천원을 놓고 갑니다. 순식간에 지폐가 아저씨의 뒷주머니로 들어갑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순수한 마음이 어둠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돈을 드린 적이 몇 번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 천원이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플라스틱 팔찌를 만원에 파는 행상인과, 그걸 세 개씩이나 구입하는 친구의 모습이 어이없게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순수한 친구도 아닌데(...)
친구는 송금을 빠르게 마치고, 염주를 고르기 시작합니다. 스님 복장을 한 행상인은 친구에게 이름을 물어봅니다. 선택받은 세 개의 염주를 손에 꼭 쥐고 눈을 감습니다. 친구도 두 손을 모읍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정말 문득,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돕고 싶단 생각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기한탄.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냉정해졌을까, 왜 이렇게 찌들었을까.
제 뒤통수를 친 건 어린 시절의 저였습니다. 그때의 순수한 마음을 잊지 말라는 목소리겠죠. 정말 세상이 이렇게 정나미가 떨어져도 사람끼리는 사랑하면서 살랬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어이없는 순간에서 아이러니하게 깨달은 옛날 마음이 슬픕니다.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받은 염주 하나를, 잘 보이는 선반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