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카페 로얄 - 1
생각/잡문집

[단편] 카페 로얄 - 1

 

<카페로얄 - 1>

 "편지를 쓰고 싶어요. 그런데 쓸 곳이 없어요."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나타난 그녀의 손은 이미 소매 안에 있었다. 아직 공기 중에 수분이 남아있는 듯한 초겨울, 학교 앞 카페에선 오래된 나무 향기가 났다.

 "감정이 메마른 것 같달까요? 삭막해요. 집 밖에 나와서 숨을 크게 들이쉬면, 기억에 잡아먹힐 듯한 그런 날인데도."

 어두운 조명과 벽돌 기둥, 붉은색 가구들이 보였다. 벽에는 나무 향기처럼 오래된 낙서들이 적혀져 있다. 2005년...1999년... 가장 오래된 1992년의 글은 평생 사랑하자는 모 커플의 벽지 위 아우성.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의 바램은 이루어졌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아주머니께서 유자차와 커피를 가져다 주셨다. 잔 위의 티스푼에 각설탕과 푸른 불꽃이 올라있다. 설탕이 녹아 커피 속을 유영한다. 은은한 조명과 푸른 불빛과 여전히 시린 손. 작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와 접시 부딪히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쳇 베이커의 재즈. 오롯한 겨울의 포근함. 그녀는 한참동안 벽에 적힌 글을 보다, 이제서야 목도리를 풀었다.

 "이런 글들을 보면, 살지도 않았던 과거를 그리워하게 돼요. 꾹꾹 늘러 쓴 글에서 마음이 아려요. 아마 기다림 때문이겠죠? 편지 한 장 주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한숨과 함께 이어서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