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키보드를 찾다가 들어버린 생각 : 취미의 매력
생각/고민, 후기, 느낀점

[생각] 키보드를 찾다가 들어버린 생각 : 취미의 매력

 최근에 키보드를 두 개를 구매했다. 제품 선택에 수많은 고민이 흘렀다. 키보드의 세계가 생각보다 심오한 탓이었다. 기계식과 멤브레인, 수많은 스위치들과 윤활 방법, 타건음과 키 배열까지. 난 그냥 적당한 키보드를 원했을 뿐인데 뭔가 엄청 많았다. 그래 이왕 사는거 제일 맘에 드는 것으로 사보자며 각종 커뮤니티와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마 그 중 가장 신기하면서 좋았던 채널은 '드보키 DBOKEY'였다.

유튜버 드보키님의 영상

 사람들이 키보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이유가 보이는 영상이랄까. 귀여운 크기, 눈이 편안한 색상, 습기를 머금은 듯한 타건음이 귀에 은근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사람들은 이 감성에 즐거움을 느껴 수십여개의 스프링에 윤활제를 붓칠했다. 그리고 느낀 점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새로운 제품을 찾아 나섰다. 즉, 그들에게 키보드를 치는 일은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말. 지금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자신의 취미를 개척하고 탐험하며 몰입하고있다. 멋지지 않은가?

 일례로 2020년 겨울, 난 스키부 주장을 했던 친구를 따라 스키를 배워보기로 했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된 스키어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스키지도자 자격증이 있다는 것이었다. 엥? 우연의 일치 아니에요? 아니다. 그 사람들이 속한 집단에서는 지도자 자격증 취득이 스키를 더 재밌게 만드는 하나의 촉매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로 한 스키어는 워킹홀리데이 기간동안 스키강사를 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을 토대로 외국계 회사에 취업했다. 겨울이면 강사 알바로 돈을 짭짤히 버는 분들도 더럿 있다. 스키어들 이외에도 내 주변엔 자신의 취미를 꾸준히 발전시켜 결과물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많다. 꼭 성과를 내야 하는 건 아니다. 몰입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매력적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매력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몇 배는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취미를 배우거나, 나의 취미를 가르쳐주거나, 함께 즐길 수 있으니까 그렇다. 단순히 새로운 세상에 대해 듣는 것만 해도 재밌으니 끌릴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사람과 밥을 먹는다고 상상해보라. 취미만한 이야기 소재가 없다. 그러니까 남는 시간에 하릴 없이 SNS에서 소모성 콘텐츠 찾아보지 말고 취미를 가져보자. 물론 나부터.


 논외로, 대구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다. 나는 대구가 재미 없는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즐길게 없어서다. 친구들 만나면 90퍼센트 확률로 시내(동성로)에 모여 밥과 술을 먹으며 대화 하는게 전부다. 문화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다. 서울처럼 동네마다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시회나 박물관 수도 적으며, 무언가 체험할 곳도 적다. 서울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환경 만드냐고? 수요만 충족되면 언제든 만들어지는게 공급 아닌가. 그러면 지금 대구의 수요는 뭐길래 재미난 것들이 안만들어질까 궁금해진다.

http://news.imaeil.com/page/view/2019121617234481541

 요즘 대구엔 카페가 정말 많이 생긴다. 사람들이 놀 게 없으니까 밥 먹고 전부 카페로 가다보니 (수요가 많아지니) 그렇다. 분명 카페에 대한 수요는 느는데, 전부 놀 게 없다고 그런다. 이건 '놀 줄 몰라서' 그렇다. 여기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모순에 빠진다. 수요가 있어야 인프라와 상권을 만들텐데, 당장의 수요가 없다. 하지만 인프라와 상권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돈을 쓸텐데. 나는 이럴 때 세금을 통해 취미 마케팅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예술공방 창업을 지원하여 많이 노출시키고 접근성을 높여야한다. 사람들이 취미를 다양하게 가지기 시작하면, 다양한 즐길거리가 생기고, 특색이 생기고, 소비가 활성화 되어 선순환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이는 문화적 자산 및 경쟁력이 되므로 국가적으로도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잠재고객이 이렇게 많은데 왜 꼬시질 못하니 ㅠㅠ

 기억(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라진 나의 삶이다. 기억에 남는 일들은 소멸을 막을 수 있다. 어떤 취미들은 삶의 소멸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한가지 취미를 진득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루 세 끼의 확실한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