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계과 감성쟁이입니다.
멘토링 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생각했는데, 글 쓰면서 이리저리 알아봤어요.
1. 교육과정의 분량이 줄어든 이유
언젠가부터 뉴스에서 '고등학교 수학 교육이 쉬워지고 있다'라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심지어 2021학년도 수능에서는 기하와 벡터를 출제범위에서 제외했죠. 저 같은 공대생에게 벡터를 제외한다는 말은 꽤 충격적입니다. 벡터를 모른 채로 '역학을 어떻게 가르치지...?'하는 생각이 들죠. 심지어 과학탐구 영역의 선택조차 난이도와 등급컷의 영향을 받으며 생물과 지구과학의 선택율이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그럼 다시 한번 '역학을 어떻게 가르치지...?'하는 생각이 들죠.
많은 것을 바라는게 아닙니다. 역학을 가르치려면 미적분, 벡터, 기본적인 물리 지식은 알아야 가르치기가 수월하죠. 대부분의 공부가 그렇 듯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르치기 쉽다는 말은 학생도 이해하기 쉽다는 얘기가 됩니다. 문제는 수학만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만든 2015년도 교육과정에선 모든 과목이 전체적으로 분량이 줄었습니다. 그러면 기획자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학업 부담 줄이기'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할 분량을 줄이면 학업의 부담이 줄어들거라 생각한거죠. 수학 출제 범위에서 기하와 벡터가 빠진 이유도 아마 킬러문제들이 이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라 추측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보고 '교육이 수능에 잡아먹혔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과정을 똑바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려고 수능이 존재해야 하는데, 편한 수능을 위해 교육과정이 존재하게 된겁니다. 주객이 전도됐달까요.
2. 왜 이런 상황이 왔는가?
단연 대한민국의 학벌주의 때문입니다. 그 학벌을 차지하는 방법 중 하나가 수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능은 줄을 세우려고 만들어진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줄을 세우려고 만들었으면, 공정해야겠죠. 그런데 빈부격차에 따른 사교육의 차이가 수능을 공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공교육을 좋게 하려 교육과정의 변화를 시도하는데, 1차원적으로 '공부범위를 줄이면 공부량을 줄이겠지!'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겁니다.
대한민국 10대 학생들의 학업 부담감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2019년 9월 한-OECD 국제교육컨퍼런스에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과외·학원 등을 포함한 오랜 학습시간, 시험 불안, 자기 효능감 부족 등 현재 대학 입시체제의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가 한국에 많은 부담을 초래하고, 인적 자본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출처 : 에듀인뉴스) 이에 대해선 더 얘기를 해봐야 입만 아플 것 같군요. 그러면 왜 바뀌어야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고민을 해봅시다.
3. 해외의 수학 교육과정 비교
* 정영옥 등. 『수학 교육과정 국제 비교 분석 연구 - 미국, 싱가포르, 영국, 일본, 호주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대한수학교육학회지 수학교육학연구』, 제 26권, 제 3호, 2016를 참고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전문교과는 고급수학과 같이 특목고에서 흔히 가르치는 과목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일반 교육과정을 들은 사람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나라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일반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은 많은 내용을 다루지 않지만 대학입학시험까지를 고려하면 대부분의 나라가 행렬, 복소수의 극좌표와 극형식, 드 므와브르 정리, 매크로린 급수, 공간벡터처럼 우리나라에서 전문교과에서 다루는 내용이나 미분방정식이란 회귀분석 등과 같이 고등학교 이상의 수준을 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해석 영역과 통계 영역에서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고 합니다.
또한,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이수계열 및 대학입학시험에서 여러 차이를 보입니다.
1) 의무이수과정의 수준은 다소 낮으나,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대입시험 평가 요목을 별도 제시
2) 학생의 진로에 따른 다양한 평가 기준과 자율적 선택
3) 미국, 영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모두 대입시험에 서술형이 포함
따라서, 일반 교육 과정도 중요하지만, 대학을 진학하길 원하는 학생들에겐 더 높은 수준의 내용들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와 선택권, 그리고 이것들을 평가받을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해야한다고 합니다.
이외에,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논문의 결론에 나와있지만 교육학적인 내용이라 생략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논문의 결론이라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네요.
위 논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편적으로) 한국의 수학 교육과정 내용이 위 나라들에 비해 적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옳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이니, 무엇이 더 '최선'인지 판단해봅시다.
4. 교육은 채용시장에 맞춰 변화한다
국가의 입장에서 교육이란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애초에 공교육 제도가 생긴 이유도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계의 수요 때문이죠. 세계 각국에서 영재들을 교육하는데 힘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돈과 시간이 남아 도는게 아니라, 영재들이 그 이상의 가치(돈)를 뽑아내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라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같은 믿음이 적용됩니다.
결론적으로, 국가는 교육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은 어디서 나오나요? 산업에서 나오죠. 그러면 국가는 산업계에 맞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용시장을 보면 교육의 틀을 볼 수 있습니다. 공장이 단순 노동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던 시절엔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치고, 일정 수준만 넘기면 합격하여 일을 할 수 있었죠. 이게 공채로 이어진 것이고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바야흐로 '전문가의 시대'입니다.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와 날이 갈수록 넓어지는 산업 분야는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험을 중요히 여기지 않습니다. 실무 경력을 보죠. 이게 상시채용입니다.
그러면 교육 또한 산업계의 수요에 맞춰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위 논문에서 보았 듯, 여러 국가에서 학생들을 다양한 과정에 맞춰 교육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다른 것은 아닙니다. 마이스터고를 포함한 특성화고, 반도체공학과와 같은 신설 학과들은 이러한 관점의 결과입니다.
학생의 수능 점수 이외에 다른 발자취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수시'는 좋은 대입 방법이지만, 수능과 최저등급의 벽이 건재한 이상 일반 교육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수능을 기준으로 돌아갑니다. 정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해봐야 생기부에 1,2 줄 정도 적힐 뿐인데 누가 열심히 할까요? 대충해서 기록만 하고 수능을 준비 하는게 결과적으로는 훨씬 이롭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가의 방법입니다. 그저 생기부 몇 줄, 자기소개서 몇 줄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양하고 심화적으로 공부한 것들이 대입에서 확실히 의미가 있어야합니다. 이 주장은 이상적이고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교육과정을 밟아온 학생들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죠. 학생부 종합 같은 수시 전형이 매번 공정성 논란을 불러오는 것처럼요. 여기서부턴 온갖 이념과 정책적인 관점이 들어가므로 말을 꺼낼 자신이 없네요. 다만 핵심은 '최선은 채용시장의 변화에 따라 교육도 바뀌어야한다는 것이고, 교육의 변화는 다양성을 지향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1) 채용시장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2) 교육은 채용시장을 따라가야한다.
3) 그러므로 교육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4) 이를 위해, 대입 시에 다양한 교육과정을 올바르게 평가할 방법이 필요하다.
번외. 학벌주의와 서울공화국
학벌주의의 이유 중 하나는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이라는 것을 포함합니다. 저는 서울 소재 대학생들이 지역 소재 대학생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문화적 경험이 가능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넓은 물에 살면 큰 물고기가 될 확률이 높고, 큰 물고기는 물을 더 넓게 만들어 선순환 구조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무조건 서울로, 해외로'라고 하는거죠. 하지만 지방 입장에서 이런 선순환은 인재유출이라는 악재로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수도권 · 지방 균형 발전이 이뤄져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멘토링 하다가 떠오른 생각에 생각을 이어 적어본 글입니다.
교육에 대한 여러 시선을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