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각 2022년 8월 17일 새벽이고, 출국이 9월 13일이니 27일 남았군요. 이제서야 계획을 조금씩 짜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실감이 가기 시작합니다. 실감이 간다는 것은 일상에 많이 들어와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블로그에 캐나다 얘기가 많아지는 것이겠죠.
당장 닥쳐올 파도에 묻혀 다른 일들은 생각이 좀처럼 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어떤 공부가 의미가 없겠냐만은 한 달 남은 시점에 그런 공부 해봐야 효과적이겠냐는 미련입니다. 실은 준비할 것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캐나다에 도착해서야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일텐데 괜히 그런 기분이 드네요. 입대할 적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자그마한 레고들이 가득찬 성지순례길을 떠나는 그 기분이요.
(아마) 1년 동안 한국에 없을 예정이니 하고 있던 일들도 정리해야 합니다. 맥도날드는 퇴사 고지 이후로 스케쥴 시간을 줄였습니다. 혹시나 캐나다에서 이력으로 쓰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만족스러운 일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최저시급 받으면서 체력을 이렇게 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5시간 정도만 해도 체력과 정신이 너무 지쳐서는 집에 와서 낮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시원합니다. 이제 이 일을 안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다만 같이 고생하며 단기간에 친해진 동료 크루분들과 매니저분들을 떠나오는건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디자인과 캐드 업무를 하던 임플란트 회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저에게 더 많은 근무를 제안했습니다. 심지어 시급 30% 인상을 제안하면서요. 사실 이제와서 시급을 인상한다고 해봤자 얼만큼 벌겠냐만은, 제안에서 느껴지는 간절함과 지금까지의 정을 생각해서 수락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택근무 베이스를 요구했더니 받아주셨습니다. '아... 이래서 재택근무 열풍이 부는 거구나...'
복싱도 캐나다에서는 하기 힘들겠죠. 가기 전에 프로 라이센스를 취득하려고 했는데, 협회의 사정으로 프로테스트 일정이 출국 이후로 미뤄졌습니다. 나름 발자취 남기려고 원정스파링도 다니고 했는데 아쉽습니다. 대회를 나가려니 준비하다가 고막이 터지고, 라이센스를 따려니 일정이 미뤄지네요. 운이 없으니 흥미가 좀 떨어져서 복싱장에 있는 랙으로 웨이트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3kg 정도 증량해서 71kg가 된 상태입니다. 제가 웨이트를 한번 시작하면 못 끊는 이유가 공든탑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서인데, 캐나다 가면 어떡하죠. 음... 캐나다 복싱을 배워와서 저희 체육관에 전수해야겠어요.
이력서를 제출하거나, 면접을 보려고 할 때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면접관이면 나 같은 사람을 뽑을 것인가'라는 마음가짐으로 저를 보는거죠. 제가 캐나다 사업장 고용주라면 저를 뽑으려고 할까요?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단순히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의 문제입니다. 일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 사람들 많은데 영어 못하는 외국인을 쓸 이유가 없죠. 돈을 덜 받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영어 실력을 감안하고도 그 사람들이 나를 뽑을 이유를 생각해봐도 잘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해온 많은 일들은 전문적이지 않으며 언어의 역할이 큰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어떻게든 먹고 살 길을 구합니다. 백개가 넘는 이력서를 돌리면 찾아오는 두세번의 기회를 잡아냅니다. 고생하려고 가는 해외가 막상은 두렵지만 저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