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 제일은 사랑이라. 그는 어릴 적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 공부하는 이유도, 취업하는 이유도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물건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각각 의미가 있다며 버리지 못한 것들이 상자 속으로 들어가 책장 위를 모조리 채웠다. 비행기표와 편지부터 끊어진 기타줄까지. 이 모든 걸 본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너 호더스 증후군이라고 알아?"
"그게 뭔데?"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병도 있구나. 하지만 상자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는걸. 그저 이렇게 가지고 있으면 그 순간을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케케묵은 냄새 조차도 시간여행의 촉진제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마무리가 있으니. 다신 못볼 인간관계도, 차고 다니던 시계를 잃어버렸을 때도, 길에서 주워온 오천원 짜리 구제 외투가 찢어졌을 때도 그는 담배를 연거푸 피우곤 했다.
마침내 그가 삶의 철칙을 세운 건 입대를 앞두고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에다. 그때 쯤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앨범으로 가득차 있었다. 장얼이 옳았다. 그가 마음이 차가운건 애초에 따뜻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사랑하지 말자.'
그는 의자를 밟고서 옷장 위의 상자들을 모두 내렸다. 큼지막한 비닐봉투에 시간들을 들이붓고서 인근 공터에서 불을 붙였다. 불꽃이 하늘 위로 춤을 추듯 번져나가고, 하얀색 재는 선율처럼 날아갔다. 일을 마친 지게꾼처럼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일기장을 펴고 방금 있었던 현상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일로 삶의 목적을 재정립 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이 사라진 삶에서는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할까. 자극과 소강, 행복과 슬픔의 순환이 없는 잠잠한 삶의 정체성에 대하여. 그는 한참을 허공만 바라봤다.
아르키메데스처럼 갑자기 일어났다.
공터를 향해 달려나간다.
그것은 어쩌면 서서히 자살하는 삶이었다.
땅에는 그을음과 재만이 남아있다. 그는 재를 한 웅큼 쥐고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굴레에 들어온 쥐새끼처럼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