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후기, 스포일러] 보이후드(Boyhood, 2014) 후기

    어찌됐든 우리의 삶은 영화 같다. 아니라고? 트루먼쇼를 즐겨보던 경찰관 아저씨도 결국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재밌어했다. 어느 새 트렌드가 되어버린 관찰예능이 다 그런거지. 오히려 우리 삶보단 재미없을 지도 모른다. 메이슨처럼 의붓아버지가 술병을 집어던지는 일은 방구석 1열에 나오지 않으니까. 파란만장한 것만 재밌는 것도 아니다. 삼시세끼가 잘나가는데엔 이유가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소년의 인생을 영화로 만듦으로써 우리 모두의 삶을 영화로 만들었지만, 공교롭게도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진 않았다. 열심히 뛴 올리비아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라톤의 기원이 된 페이디피데스는 그래서 죽은 걸지도 모른다. "무언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당연하지만 주연 없는 영화 없고, 조연 없는 영화 없다. 나의..

    [영화 후기, 스포일러] 소공녀 후기

    위스키와 담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 콘크리트처럼 서있는 두 가지 낭만. 켜켜이 감싼 옷 사이를 공기처럼 흘러온 한기에 사랑이 내일로 가버려도. 에쎄를 피우든, 디스를 피우든 담배는 담배니까. 숫자와 함께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고스넉히 잠잠한 심장. 나는 지퍼만 열면 툇마루가 되는 세상에 살고있어. 너는 행복하니? P.S : 모과차가 기관지에 좋대.

    [단편] 첫문장과 끝문장. 무엇이 더 중요하세요?

    새벽의 동아리실엔 노트북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삿포로 맥주캔 몇 개가 올려진 책상 앞으로 남녀가 나란히 앉아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자기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히터가 꺼진 탓에 공기가 제법 차다. “우리…” 초등학생 때, 나는 한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얼굴이 예뻐 그 아이 주변엔 항상 남자아이들이 가득했고, 그다지 잘난 것도 없던 나는 항상 친구라는 이름으로 뒤로 빠져있었다. 그래도 밤새 하던 기도가 어느정도 통했는지 짝꿍이 되는 일이 잦아서 친해질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이는 감쪽같이 전학을 가버렸다. 연락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한 계기로 그 아이를 만났다. 여전히 예쁜 얼굴. 나는 운이 좋게 연애를..

    [영화 후기, 스포일러] 너의 결혼식을 봤(었)다

    2020. 03 .08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누군가와 같은 휴대폰을 쓴다거나,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는 것, 또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우연한 일로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은 그 관계에 비현실성을 부여하며, 그래서 더 특별하다. 물론 같은 것만이 특별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한다거나,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당연한 일로 관계가 시작되지 못하더라도, 자석은 원래 같은 극이 아니라 다른 극끼리 만난다며 특별하게 느낀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한다. 수많은 첫사랑 영화들을 보며 왜 그리들 클리셰 덩어리들을 만들어낼까 생각했다. 황우연이 환승희를 대학 표지에서 찾아내고, 환승희가 키스 바로 직전에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엔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당연한 그림을 대체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