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6 기준,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다 심리적 거리는 한 달인데, 정작 비행기 타면 뚝딱 도착해버리니 한 편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위해 만나면 "어땠어?" 라고 많이들 물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같은 질문을 할테다. 언젠가 나도 한번 결산을 해야할 것이라 생각했으니, 한번 해본다. 두 편에 나눠서 작성할 예정이다. 1편은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결산, 2편은 예비 워홀러를 위한 조언이다.
이번 글에선 1편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결산'을 다룬다.
1. 영어
언어적 성취를 어떻게하면 표현할 수 있을까. 아직 시험을 치지 않아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험이 모든게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영어로 친구를 사귀는 일, 스몰토크를 하는 일, 고객을 상대하는 일, 농담과 연애, 맞장구 등은 시험과 전혀 다른 문제다. 난 이게 가장 어려웠다. 상대 말을 듣고 내가 하고싶은 말은 하겠는데, 대체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지. 한국에서 마주하던 외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 그땐 내가 Desperate 하지 않았나보다.
운이 좋게도, 클라이언트의 대부분이 외국인인 이주공사에서 일을 했다. 대면 상담, 전화, 메일, 간단한 발표 등 업무적으로 영어를 많이 접했다. 서빙도 병행하면서 손님과의 스몰토크, 매니저로부터의 지시, Coworker에게 부탁 등도 배울 수 있었다. Misdiagnosis Association 에서 volunteer 할 때는 영어로 업무조율하고 Article 도 써보았으며 PT할 때는 온갖 리액션과 신체 관련 단어들을 많이 배운 듯하다. 분야 별로 다른 영어를 배우게 되지만, 일상용으로 가장 좋은 것은 아무래도 연애가 최고였다. 쩝. 무엇보다, 시각이나 정보에서 오는 낯섬을 이겨낼 익숙함이 필요하다. 백인이나 흑인이라는 시각적 낯섬, 먼 나라 출신이라는 정보적 낯섬은 당신의 언어적 능률을 낮추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종합하면 '영어로 친구 사귀기, 스몰토크, 업무 등 회화 전반에 대한 자신감 절대 상승'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영화도 영어로 대충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내가 예상한 일이 일어났다. 원어로 느끼는 문화는 번역과는 1광년 쯤의 갭이 있었다. 그 갭의 반 이상은 존댓말의 유무가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걸 정말 좋아한다. 존댓말이 없으니 나이를 물을 필요가 없다. 호칭을 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호칭에 맞게 행동하고 사고하던 내가 없다. 20살과 얘기를 하던, 30살과 얘기를 하던 그 사람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지내다보면 이 친구가 몇 살 이었는지도 까먹은 채 지낸다. 상하가 정의되지 않으니 Stranger에게 말도 쉽게걸 수 있다. (영어에 존중의 표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어릴 적부터 영어를 배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문화이다. 나는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주의인데, 한국어만 알면 즐길 수 있는게 적어지지 않는가?.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 언어는 큰 역할을 한다. 팝송을 들으며 바로 이해하는 것과, 번역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천지 차이이며, 번역으로는 피번역언어의 모든 것을 전달할 수는 없다. 심지어 내 경험 상 언어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기억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캐나다에서 만난 첫 여자친구는 두 살에 캐나다로 온 한국계 캐네디언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어를 잘 못해서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어떤 감정표현을 들어도 한국어만큼 와닿지가 않았다. I love you를 들으면 사랑한다는 건 알겠는데 도통 와닿지가 않았다. 헤어지곤 나서 이유를 생각해보니, 무슨 영어로 사랑을 나누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였다. 언어의 이해에는 기억이 스며있다. 다행히, 많은 사건들을 경험해서 예전보다야 낫다.
2. 커리어
다섯가지 일을 경험해보았다. 두 달 동안 딱 두 번 쉰 적도 있다.
서빙, 사무직(이주공사), CAD (한국회사와 원격 업무), PT(로컬 상대), 가이드 영상 제작 및 아티클 작성 (Volunteer).
각 업무에 대한 소회는 주기적으로 글로 남겨두었다.
a. 서빙
b. 이주공사
(CAD, Volunteer 포함)
이주공사 관련은 이 외에도 여러 글들이 있는데, 정리가 잘된 글들만 첨부.
c. PT
내가 캐나다에서 PT를 하게 될 줄이야 시리즈.
https://brunch.co.kr/@senti-mech/74
https://brunch.co.kr/@senti-mech/75
https://brunch.co.kr/@senti-mech/76
https://brunch.co.kr/@senti-mech/78
3. 문화
a. 식문화
캐나다에 오자마자 좋다고 느낀 것은,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Authentic 은 아니여도 체험해볼 수 있는게 어딘가. 가장 기본적인 멕시코, 중국, 인도부터 그리스, 자메이카, 에티오피아, 슬라브 등등. 미국이 멜팅팟이라면 캐나다는 모자이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문화를 유지하며 사는 만큼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 나는 새로운 것들을 좋아해서 잘 맞았다. 중동이랑 멕시칸은 많이 그리울 듯하다.
b. 네트워킹
진정한 인맥의 나라는 한국이 아니다. 유럽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북미는 레퍼런스 문화가 당연하게 자리 잡혀있다. 회사 내에 나를 추천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없는 경우보다 수 배는 쉽게 취직할 수 있다. 답답한 은행 업무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순식간에 처리된다. 치과에 가도 내가 원하는 치위생사와의 스케쥴을 따로 잡는다. 이렇 듯 일상 곳곳에 세일즈, 크게 보면 개인주의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러니 무작정 찾아온 워크인보다 내 고객에게 더 잘해줄 수 밖에.
c. 이민자의 나라
단일민족 국가인 한국은 한국인들끼리 비슷한 배경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 사람 왜 저래?’가 쉽게 나올 수 있다. 또는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그런데, 이민국가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사니, 조금 다르거나 특이하더라도 ‘그런갑다.’ 아니면 ‘신기하네.’하고 치운다.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단 한 치도 가늠할 수 없으니까. (무조건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가정하고, 간섭하고, 판단(judge)하는 사회풍조는 내가 한국으로 정말 돌아가기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다. 사실 지금도 유튜브 댓글들 보면 한숨만 나온다.
d. 의료체계와 식리브 (Sick leave)
식리브(Sick leave)는 아무 조건 없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유급 또는 무급 병가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머리가 좀 아픈 것 같다. 그러면 전화해서 오늘 Sick leave 라고 하면 끝인 일이다. 캐나다는 미국과 다르게 Sick leave 제공(유급 포함)이 법적으로 의무화 되어있고 사용에 대한 거부감도 거의 없다. 경우마다 다르지만.
한국과 다르게 어떻게 이런 제도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비교적 열악한 의료환경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아프면 언제든 전문의를 빠르게 값싸게 만날 수 있지만, 캐나다는 그렇지 않으니까.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메딕이 항상 따라붙는 마린이 더 많이 일하면서 쉴 기회도 적은 것이다.
e. 데이케어 가격
무상교육의 나라 캐나다는 아쉽게도 초등학교(Primary School)부터 공짜다. 그 전까진 유료라는 뜻. 우리나라의 어린이집, 유치원 개념은 데이케어(Daycare)가 가지고 있으며, 공립 데이케어는 없다. 모두 사립이다. 즉, 선택지 없이 비싼 값을 지불해야한다. 2023년 기준 한 달에 약 150만원 정도는 잡야아한다. (링크) CCB(Canada Child Benefits) 는 가구 소득이 세금 공제 전 연 1억일 경우 달 35만원 정도 지원해준다. 저기서 세금 떼고 나면 8천만원이다. 렌트비 포함한 물가 생각하면 택도 없다. 최근 정부 발표에 의하면 캐나다는 매년 1%의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출산율은 1.4 명. 왜 이민을 받는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참고할만한 링크를 첨부한다. (링크 – 주에 최대 CA$573 는 대부분 렌트비 충당하면… 끝일 듯)
막상 생각해보니 한국 출산정책은 적어도 캐나다보단 좋다. 최근 유급 육아휴직 기간이 18개월로 늘어났고, 월 최대 18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있고, 사립 또한 보통 캐나다보다 저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올해 2분기 0.7을 찍은 것은 한국 사회에 자리잡은 타자 의식 문화가 크다고 본다. 나는 한국의 많은 불행이 이로 말미암는다고 생각하고있다. 아래 항목에서 조금 더 언급한다.
f. 나이문화와 ‘일반적인 삶’
북미는 한국에 비해 나이를 크게 중요시 하지 않는다. 이건 존댓말이 없는 영어의 특성과 겹쳐, 사회활동에서 나이의 부담을 많이 줄여준다. 예를 들면, 대학교에 30대, 40대가 자연스럽게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스몰토크를 편하게 이어나가는 경우도 많다. 유명한 식당에 가면 나이가 드신 분들이 서빙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나이가 있음에도 대학교를 가야만 했던 이유처럼 각자 만의 사정이 다 있을테다. 하지만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히 본받을 만하다.
반면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타자를 의식하고 공동체를 만들다 보니, ‘다른 것은 틀린 것’을 나도 모르게 생각한다. 자연스레 머리 속에 정석이 자리하곤 판단하기 시작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차, 좋은 배우자, 좋은 집. 각 챕터에 알맞은 나이까지.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면 되는일들에 자꾸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왜 저러냐'
같은 말들과 시선을 보낸다. 이게 우리 행복도를 갉아먹는 주범이다. 앞으로 남이 무엇을 하면 '그런갑다.'하고 넘어가자.
4. 이민의 길
“나가면 고생 밖에 더하나.”
“그래도 한국이 최고다.”
최고라는 말은 어찌됐든 비교 대상이 있어야한다. 해외에 살아봐야 저 말의 진위여부를 알 수 있다. 고작 1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유학생, 워홀러, 영주권자, 시민권자 등 폭 넓게 사람들을 만났다. 마침 또 이주공사에서 일하니 이민자들의 삶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민에 만족하는 사람도, 적응하지 못해 돌아가는 사람도, 돌아가기엔 늦은 사람도 있다. 제각기 알맞은 나라와 도시가 있다.
한국과 캐나다 두 곳 중에서 고르자면, 나는 후자의 문화가 나와 더 잘 맞다. 생존에 대한 은근한 자신감도 얻었다. 역시 경험해봐야 알지.
5. 추억
사람은 추억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이다. 단연코 캐나다에서 보낸 1년은 내 20대 중에서 가장 심적으로 편안했다. 말해 뭐해. 많은 사진들, 브런치에 남겨진 글들, 일기, 기억, 사람 그리고 모두. 이전에도 말했지만, 평생 그리워하며 살 예정이다. 그리움을 좇아 돌아올지도 모른다.
어쩌다보니 한국 사회 분위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비판하였는데, 당연히 한국 사회에도 좋은 점이 있다. 더하여, 각자 사람마다 잘 맞는 도시나 나라가 있는 것이고, 나는 한국보단 저 동네가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이 글로 인해 무작정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나의 감정적 소회를 많이 제외한 채 글을 썼다. 이 부분은 다른 글을 통해 남길 예정이며, 2부 주제는 '워킹홀리데이를 꿈꾸시는 분들을 위한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