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캐나다] 20대에 보내는 1년의 무게 - 지금부터는 이정표가 없다

2023.06.09

 

 사실 아직도 여기서 1년 더 있어야하나 결정하지 못했다. 더 살자로 기운 마음이 다시 반대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다시 더 살자로 기울었다. 갈대 같은 마음이 나름 큰 결정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이 기운 이유는 업무와 좁은 사회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1년은 해봐야 한다지만, 꼭 그런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배울게 있을 때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다. 이주공사의 업무란 (어떤 영업이든지 그렇다지만) 클라이언트를 데려와서 LMIA 와 영주권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이고, 나는 마케팅과 세일즈를 맡고 있으니 클라이언트를 데려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문제는 일반적인 대행사가 늘상 그렇 듯 회사 간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즉, 기술력의 차이가 거의 없다. 10개의 정상적인 이주공사가 있다면 어떠한 케이스를 두고 모두 같은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다. "저희는 다른 곳과 다르게..."라고 할 수 없다. 그럼 가격과 이미지로 커버를 쳐야한다. 가격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미지가 전부. 특별한 마케팅을 진행할 여력이 되지 않은 환경과 한인 사회의 규모, 이주공사의 한계가 조합되어 반복적인 업무를 만든다.

 

 1년 더 해야겠다고 마음이 기운 이유는 밴쿠버의 여름과 혹시 모를 이민의 길. 이렇게 날씨가 좋아진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쾌적하며 해는 10시는 되어야 진다. 퇴근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지친 몸으로 술을 마시다 조용한 원룸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 조용하고 한적한 집과 동네에 지내며 (렌트비가 미치도록 비싸지만) 여가시간에 공원에 가는 일. 나는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줄도 몰랐는데 정말 행복이 따로 없다.

 

 가끔 귀국한 나의 삶을 생각한다. 학교 수업을 듣거나 퇴근 후에 빌딩 숲을 지나 닭장 같은 집에 들어가는 일. 친구들이 놀자는 말에 나가서 북적거리는 술집에서 취해 돌아오는 일. 집 주변에 마음 놓고 눕고 놀 공원이 없는 일. 물론 친구 만나서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미 이 곳의 건전한 즐거움을 경험한 이상 수도 없이 생각날 거라 확신할 수 있다.

 

 더구나 나는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끊임없는 갈등, 갈등으로 인한 고쳐지지 않는 문제들, 문제임에도 언급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이미 곪아터진 저출산과 장기 저성장 진입. 나라를 먹여살리던 삼성의 부진 등. 침몰하는 배에 타서는 1등실을 차지하겠노라 외치는 일은 미련하다는 생각이다.

 

이민을 깔고 가는 시나리오들

 

1. 1년 더 하고 졸업 후 바로 이민을 하는 시나리오

 

 도망친 곳에 낙원이란 없다. 만약 내가 여기서 한국의 전공과 학력을 포기하고 캐나다에 정착한다면 미래는 보통 정해져있다. 여기서 비자 지원을 받으면 한국 돌아가기 전에 2년 경력을 만들 수 있다. 그럼 28세에 복학해서 29세에 졸업을 한다. 캐나다에 돌아오면 못해도 1년 안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럼 한국 나이 30세, 만 나이로 28세가 된다. 

 

 그럼 이제 학교를 가야한다. 취업시장에서 이 곳 학교를 나왔는가는 굉장히 중요하니까. 이제 영주권이 있으므로 학비가 International 대비 1/3이 된다. 하지만 SFU 나 UBC 를 들어가 두번 째 Bachelor 를 따기엔 무리가 있으니 BCIT 에 들어간다. 컴퓨터 싸이언스 또는 정비 관련 학과를 2년에서 4년 정도 수강하고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럼 최소 나이 32세. 가진 건 학자금 빚. 커리어 한계도 명확하다.

 

2. 지금 바로 한국에 돌아가 졸업 후 취업을 하는 시나리오

 

 한국나이 27세에 복학해서, 28세에 졸업한다. 이민을 목표로 두고 있으니 원래 생각하던 기술영업은 할 수 없다. 영업은 언어의 벽에 막혀 이민 시 경력을 쓰기 어려우니까. 가장 좋은 것은 말 그대로 엔지니어 다운 엔지니어를 하는 것이다. PM업무라던지, 설계라던지, 공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그런 것들. 제너럴리스트보단 스페셜리스트가 더 먹히지 않을까 싶다.

 

 3년에서 4년 가량 경력을 쌓으면 약 32세. 만 나이 30세. 경력을 이용하여 해외에 취업한다. 이 때 커리어에 한계는 없다.

 

3. 여기서 1년을 더 일한 후 한국에 돌아가 졸업 후 취업을 하는 시나리오

 

 플랜이 위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문제는 나이. 취업시장에서 내가 남들보다 1년을 더 살았다면, 그 1년의 가치를 증명해야한다. 하지만 그게 직무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예를 들어 설계 엔지니어 하는데 영어실력과 세일즈&마케팅 경력은 크게 의미가 없다. 고작 해봐야 회사 생활을 이미 해봤다 정도. 최근 매너리즘에 빠져 업무에 허탈감을 느낀 것도 이런 발상에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면, 이 경력을 내 직무와 연관시켜 어떻게 써먹을 지는 나의 몫이다. 나는 디테일에 신경을 잘 못쓰는 사람이라 다수의 케이스를 다뤄야하는 이주공사는 이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 말빨이 주는 신뢰감으로 사람을 끌어들여야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배울 점이다. 이건 

 

...

 

2023.06.16

 

 다 필요없고, 잘 생각해보니 답은 정해져있는데 자꾸 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자꾸 찾았던 것 같다. 1년이 뭐 별거냐지만 20대 중후반의 선택은 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그게 내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남들 졸업하고 취업하는 만큼 뭔가를 이뤄야겠다고 아둥바둥한 이유이기도 하고. 1년을 더 있게 된다면, 내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그걸 달성할 자신이 없다. 이력서에 적힐 2년의 경력 조차도 내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건데 어떻게 잘 쓸 수 있겠는가. 향후 30년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커리어 시작을 모종의 방황으로 방해해서는 안될 듯 싶다. 졸업 후 정말 와야겠단 생각이 들면 그 때 해도 늦지 않다. 이게 근 1~2달 간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Best Choice 는 아니지만, Better Choice 라고 믿는다.